어느 선지자의 죽음 - 김성웅 목사 (부회장)

선지자 하나냐가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취하여 꺾고 모든 백성 앞에서 말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두 해가 차기 전에 열방의 목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같이 꺾어 버리리라 하매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 길을 가니라. (렘 28:10-11) 

예레미야 28장은 거짓 선지자 하나냐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좀 뒤에 이르러서야 거짓 선지자인줄 알았지 당시에 이 사람은 일찌기 성전에 출입하며 여러 사람들에게 꽤나 알려진듯 합니다. 사람들도 그를 예언자로 인정하고 귀를 기울이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28장 1절 이하에 보면 유다 왕 시드기야가 즉위한지 4년 5월에 제사장과 모든 백성 앞에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라는 기록이 나와 있으며 그는 기브온의 앗술의 아들로 신원도 확실합니다. 더욱이 그의 이름 하나냐 라는 뜻은 '하나님은 자비하시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의 예언은 "여호와께서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으셨느니라" 라고 말합니다. 선지자 예레미야와 정반대되는 내용입니다. 예레미야는 27장에서 바벨론에 의하여 멍에를 메고 고통당할 것을 분명히 예언합니다. 27장 9절에 너희는 선지자나 너희 복술이나 꿈꾸는 자나 너희 술사나 너희 요술객이 이르기를 너희가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리라 하여도 듣지 말라 하고 주의를 줍니다. 

그런데 하나냐는 왜 이런 예언을 하였을까요? 당시에 임금을 위시하여 고관들과 백성들이 한가지로 다 이러한 무사 안일한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의 예언은 불안하게 들렸고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었습니다. 초라하고 볼품없는 선지자 예레미야는 분명 힘있게 바벨론은 침범한다, 저항하지 말라고 합니다. 애국적 견지에서도, 내쇼날리즘 입장에서도 수용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냐는 예언의 촛점을 백성의 마음에 맞추었습니다. 듣기 좋고 부드럽고 환영받는 예언입니다. 예언은 물론 백성들에게 촛점을 맞추는 것이야 누구인들 모르겠습니까? 문제는 하나님이 하신 예언이냐 아니냐 입니다. 우리의 말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포장하여 한다면 말씀 도적입니다. 모든 예언이 시대 상황을 맞추어서 많이 하여지지만 그렇다고 그 시대 비위를 맞추어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냐는 세상의 인심을 사로잡는데는 눈을 떴지만 예언자로서 갖추어야 할 하나님과 눈을 맞추는데는 실패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보고 주의 말씀 전할 때에 윤리 강의 하라고, 철학 강의 하라고 하나님이 보내셨습니까? 듣기좋게 문학적으로 빚어서 말씀은 마치 끝부분에 살짝 고물만 바르라고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예언자들의 세계는 고독합니다. 예언자들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말씀에 거하여 살 때에 보는 만족감이 최고의 기쁨입니다. 

9.11 사태가 미국안에 발생하고 사람들이 떼죽음 당하여도 여전히 동성애를 외쳐야 합니까? 카나다에서도 이제 미국안에서도 점점 합법화되어 가는 일들을 바라보면서도 오늘의 강단이 치는 설교는 하지 않는다 하여 스스로 예언을 약화시키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네가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으니 금년에 죽으리라 하더니 하나냐는 그 해 7월에 죽었더라 (16, 17절) 하셨습니다. 장로교는 이제 하나님의 생생한 복음과 예언의 세계로 발을 맞추어 길을 떠나야 합니다. 우리는 2004년 NKPC 총회의 주제를 하나님께서 선지자 에스겔을 골짜기에 세우시고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던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생기가 불도록 대언하므로서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살아나도록 예언의 목청을 높이십시다. 주안에서 여러분의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