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예레미야 29:1-14    제목    이민자 5계명

 

1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이 같은 편지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고 간 포로중 남아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냈는데 2그 때는 여고니야 왕과 왕후와 궁중 내시들과 유다와 예루살렘의 고관들과 기능공과 토공들이 예루살렘에서 떠난 후라. 3유다의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보내어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가게 한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 편으로 말하되 4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5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6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7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8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듣고 믿지 말라. 9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4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들을 포로 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 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I.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말은 헬라어로서 원래흩어짐’(dispersion)이란 뜻입니다. 신명기 28:25의 「70인역」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할 때의 이스라엘의 운명을 설명할 때 적에게 패해 흩어지게 되는 상태를디아스포라는 말로 표현하면서 바벨론 포로 이후 전 세계로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전문용어가 되었습니다. [s1]

   이 디아스포라가 시작 된 것이 바로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유다가 멸망하고 왕족과 귀족, 제사장들, 그리고 다수의 민중이 강제 이주된바벨론 포로사건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 말씀을 받아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편지를 통해 하나님께서 디아스포라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II.    

 

   () 막막한 디아스포라에 주시는 위로의 말씀

 

   이들의 현황은 한 마디로 말해서 파산의 폐허였습니다.

 

주전 589년부터 2년 동안, 신바빌로니아의 느브갓네살은 현실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무리한 반기를 들었던 유대의 시드기야 왕을 제거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여 식량과 물자의 공급을 일체 차단시켰다. 그 결과 성내의 거민 들이 겪는 고통의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를 목격했었던 한 눈물의 선지자가 가슴을 찢으며 읊은 노래가 바로 애가서이다.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도다”(애가 1:2). 식량 공급이 끊어지고 상황이 극악해지면서 인간이 자신들의 아이를 잡아먹는 비극이 발생. “여호와여 감찰하소서 뉘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손에 받든 아이를 먹으오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어찌 주의 성소에서 살륙을 당하오리까?(애가 2:20). 결국 예루살렘 성은 무너지고 바벨론의 군사들이 예루살렘을 불태우는데, 절대로 무너질 수 없는 것이라 믿었던 솔로몬이 지은 그 아름답고 장엄한 성전을 불태우고, 왕궁을 사르고, 귀인들의 집을 비롯하여 모든 집을 불태워 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왕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 버리고 사슬에 매어 짐승처럼 바벨론으로 끌고 가 버렸다(왕하 25:7-9). 그와 더불어 그 땅의 사람들 중 쓸 만한 인재들은 몽땅 바벨론에 포로로 잡아간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선택하셨고 그들과 같이 계신다는 상징으로서 절대로 무너질 수 없는 성전이 불타 버렸으니 그들은 하나님조차 바라볼 희망이 없었다. (이것은 엄청난 신학적 혼동을 야기했다). 다윗 이후 이어오던 왕조는 눈까지 빼앗기면서 비참하게 끌려갔고, 하나님의 약속의 표증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폐허가 되어 버렸으며, 여호와를 기업 삼아 살았던 제사장이 없어지고 하나님과 그들의 관계를 말하는 제사도 중단되어 버렸다. 그들이 역사를 두고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지는 비극의 현장이었다.  주전 587년의 바벨론 유수의 상황은, 사회-경제적, 심리적, 신학적 파산의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유승원 목사 특강, “섬김의 신학”).

 

   이런 상황에서 적어도 70년의 포로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는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 말씀을 받은 유다 백성들은 처참하고 막막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그 현실은 불안하고’, 처량하고 외롭고 슬펐을 것입니다. ‘막막하다는 것이 가장 적합한 표현일 것입니다. (비슷한 느낌들을 다 한번 씩 겪었을 것입니다. 저의 경험 - 대한민국 남자는 역시 군에 홀로 끌려갈 때… 가족과 애인은 뒤에서 울고, 아름답던 청년 시절에 빡빡 깎인 머리로 사납게 생긴 조교들의 지시에 따라 입영할 때 그 비장함[입영전야의 아픈 노래 - 최백호의입영전야’ - “아쉬운 밤 흐뭇한 밤, 뽀얀 담배연기, 둥근 너의 얼굴 보이고, 넘치는 술잔엔 너의 웃음이, 정든 우리 헤어져도 다시 만날 그날까지, 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 기차는 떠나고 보내는 여인은 큰 눈에 눈물이 가득 담겨 찢어진 가슴 안고 돌아서고… 그때 울던 여인이 이 자리에 있는데 요즘은 전혀~ 형수, 제수, 웬수 ^^). 요즘은 덜하지만 예전에 이민 올 때, 유학 떠날 때 그랬습니다. 가방에 겨우 몇 푼 챙겨 넣고… 다들 그 막막했던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요즘 미국장로교 내 우리 한인교회 모습 같기도 합니다.

   오늘 바벨론에 사로잡혀 가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그랬습니다. 한심하고 답답하고 막막해서 어찌할 줄을 몰라 좌절과 낙망으로 늘어져 있었을 때였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포로 되어 강제 이주된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비록 범죄하여 심판을 받아 바벨론에 멸망당하고 이제 포로 생활을 시작해야 되지만 벌을 주고 나서 자녀들이 애처로워 사랑의 위로를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제 유다를 위로하십니다. (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 주시는 - 사랑하기 때문에 사람 되라고 때리셨습니다. 그러나 그 맞은 데가 얼마나 아플까 속이 상해 어루만져 위로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시켜 그들에게 편지를 쓰게 하셨습니다.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잡혀간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냅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같이 읽은 본문 말씀입니다.

   디아스포라는 이스라엘 이민의 시작이었습니다. 디아스포라의 본격적 시작으로 자리매김을 한 바벨론 포로 생활은 그들의 이민이었습니다. 강제된 이주였지만 사실은 이민이었습니다. 바벨론은 유다보다 더 크고 물질적 문명이 다양하게 풍요로운 제국이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미국과 같은 힘을 가진 곳이었습니다. 이 막막한 현실에서 (이유와 계기가 무엇이었든 간) 항상 싫은 소리를 하던 예레미야를 통해 이번에는 격려의 말씀을 주십니다. 이것은 디아스포라의 삶을 위한 계명이었습니다. 이민자를 위한 말씀입니다. [s2] 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우리는 이민자입니다. 미국은 소위 신대륙으로 이민 온 사람들의 나라였습니다. 계기는 다양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새 대륙에서 돈 벌어 잘 살려고. 노예로 끌려와서. 하와이 사탕수수밭의 노동자로 실려 와서. 결혼을 해서, 그리고 이제 또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 등등. 오늘의 말씀은 정확하게 그렇게 이민 와서 사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인 우리를 위한 계명입니다. 귀담아 듣도록 하십시다. 뭐라고 하시나요?

 

   () 정착하여 생육하고 번성하라(5-6)

 

   (1) 정착하라(5)

 

   우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s3] 5,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무슨 뜻입니까? 비록 포로로 잡혀가는 곳이지만 불안해하면서 유리방황하지 말고 그곳에서 정착하라는 말씀입니다. 정착하라. 마음을 붙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마음을 붙이셨습니까? 마음을 붙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민자 계명 1 - 마음을 붙여라!

   비록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던 약속의 땅에서 강제로 추방당해 이방인의 땅에 왔지만 그 이방인의 땅을 가나안 땅의 기업 또는 분깃처럼 생각하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집 짓고 텃밭 만들고 거기서 나오는 곡식과 과일을 먹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 기업에서 하는 일입니다. 바벨론을 기업 삼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미국을 기업 삼으로 하시는 것!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을 위한 애가를 부를 때 깨달았습니다. 원래 기업은 땅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땅이 기업이 아니라 여호와가 기업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은 줄 알았습니다. 자신의 기업이 사라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3:20-24.

 

20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21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22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24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하나님이 기업이십니다. 땅이 기업이 아닙니다. 기업이신 하나님께서 땅을 주시니까 그것이 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같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땅이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그 기업을 바탕으로 정착합니다. 집을 짓습니다. 텃밭을 가꿉니다. 거기서 나온 산물을 취하여 먹습니다. 저의 미시간이, bankrupt한 디트로이트가 여호와의 기업입니다. 시편 16:5-6. 5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집을 지으세요. 텃밭을 일구세요. 그리고 거기서 나는 열매를 드세요.

 

   (2) 행복하게 살면서 지경을 넓히세요(6)

 

   네 정착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할 일을 또 명령하십니다. 포로로 잡혀갔다고 인생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라 하십니다.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래서 이런 계명을 주십니다. [s4] 이민자 계명 두 번째 것입니다. 29:6.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포기하여 졸아들지 말고 가슴을 펴고 계속 자신 있게 살아서 숫자를 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인생 끝난 것 아니다. 결혼하라. 자식을 낳아라. 그 자식들이 배우자를 얻어서 또 다시 자녀들을 생산토록 하라. 번성하라. 쪼그라들지 말라.

   이것이 어떤 명령입니까? 1:28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에게 주신 첫 번째 계명입니다. 복 주시는 하나님의 그 복을 받아 넉넉하고 풍성하게 살면서 삶의 지경을 넓혀나가는 것입니다. 창조하는 것입니다. 짓는 것입니다. 건설하는 것입니다. 재산을 늘여가는 것이에요. ‘잘 먹고 잘 살아 행복하라는 창조와 번영의 명령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 세상을 멸하고 나서 구원한 노아와 그 후손에게도 같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9:1).

   포로로 잡혀온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이 명령을 주십니다. 새로운 출발입니다. 비록 잡혀온 곳에서의 삶이지만 기죽지 말고 생산을 하라는 말입니다. 거기서 번성하고 쇠잔하지 않게 하라. 지경을 넓히라 하십니다. 열심히 일해서 자기의 영역을 넓히십시오. 부지런히 개척하여 번성하면서 영토를 확장하십시오. 재산을 늘리세요. 사업을 확장하십시오. 견고하게 만드십시오. 물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파괴적 탐욕의 문어발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건강한 확장, 최선을 다하면서 자연스럽게 자라라는 하나님 강복의 지경 넓히기를 하라는 명령입니다. 디아스포라의 삶이라고 위축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기죽을 것 없다는 것입니다. 잘 살아라. 복을 주겠으니 행복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민자는 잘 살아야 합니다. (번영신학 비판은 미국 주류에게나 할 말이고 우리는 번영해야 됩니다. 이민자는 소수로 쪼그라들지 말고 번영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는 포로와 같이 언어도 잘 통하지 않아요. 저들과 피부색이 다르고 문화가 달라요. 불편한 점이 많고 답답할 때가 많아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죽지 말라 하십니다. 쪼그라들지 말라 하십니다. 당당하고 행복하게 잘 사세요.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죽어라 죽어라 하지 말고 잘 사세요. 생육하고 번성하세요. 하나님께서 이민자들을 향해 갖고 계신 뜻입니다. 그러나 나만 생각하여 이기적이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 기여하십시오(7).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바벨론이 그들을 강제로 이주하여 여러 마을에 흩어놓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을 이방인이라 해서 무시하고 미워하고 적대시해야 되나요? 아닙니다.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이민자 계명 제 3입니다. [s5] 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그들이 끌려가서 속하여 살게 된 마을이 잘 되기를 소원하고 그 마을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마을이 잘 살도록 힘쓰라고 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너희가 들어가서 살게 되는 그 이웃에 기여하는 삶을 살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도움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곳을 고향처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비록 이민자가 어렵지만 이제 정착의 주인의식을 갖고 이웃을 사랑해야 됩니다.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주려 하면서 그 사회의 평안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라 하십니다. 우리로 인해 이곳이 편안하게 됩니다. 우리는 평화 만드는 자입니다. 평안을 전하는 자입니다. minority로 살다보면 주류사회에 열등감을 갖고 그러다 보면 괜히 미워하고 무시하고 욕하고 반항적이 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지 말라 하십니다. 이웃의 평안을 위해 기여하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그래야 됩니다. 한인들은 이 미국 사회를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우리는 모일 때마다 지역을 위해 기도합니다. 나라를 위해 간구합니다. 디아스포라의 기도입니다. 그 동안 입은 혜택을 생각해야 됩니다. 앞에 온 이민자들이 온갖 고생 다하면서 싸워서 쟁취한 권리들을 우리 후발 이민자들이 누리고 있습니다. 당장 보기에 속 썩이는 것 같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 이민자들이 너무 마음의 여유와 사랑이 없어 각박하면 곤란합니다. 주류사회에 기여를 하십시다. 지역 선교에 힘쓰는 분들이 이를 잘 감당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합니다.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이민자라고 해서 내 이익만 빼먹는 얌체 같은 삶을 살아서는 곤란합니다. 세금 내고 어려운 사람 돕고 지역을 위해 공헌하고 기여하셔야 됩니다. 자기네끼리 뭉쳐서 주류사회가 볼 때 경원시 하게 되고 싫어하는 게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 사랑 우리 지역을 사랑하고 섬기고 위하는 이민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고 그를 위해 힘쓰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복을 받아 더 잘 될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 하셨습니다. 주는 자가 되십시다.

 

   () 속임수의 영들을 조심하십시오(8-9).

 

   그러나 한편 이웃에 섞여 살면서 그들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고 힘쓰지만 그들의 죄악 된 문화에 물들어서는 안 된다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네 번째 이민자 계명이 있습니다. [s6] 8-9절입니다.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듣고 믿지 말라. 9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이민자들의 막막함과 허함 때문에 엉뚱한 것들 좇지 않도록 하십시오. 주류 사회의 그럴듯한 문화와 가치관을 생각 없이 무조건 수용해서는 안 됩니다. 현대 교회의 문제 중 하나는 이른바 리처드 니버의 유형론을 빌어서 얘기하자면문화의 그리스도’, ‘Christ of Culture’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을 그대로 교회에 주입시킨 다원주의, 동성애 문제를 단순하게 소수자 인권의 frame에 가두는 것, 뉴에이지, 복음을 버리고 NGO 같이 변질된 교회… 오늘날 세상의 가치관으로 교회를 압박하고 세상 편을 들어 교회를 괴롭히는 것을 개혁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런 이상한 짓 하는 사람들에게 빠지지 마십시오.

   이상한 환상과 꿈과 허황한 이야기가 하나님 나라의 현실감각을 마비시키는가 보세요. 다 거짓선지자들입니다. 잘못된 신비주의에 절대 빠지지 마세요. 정통에 서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민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민자는 외롭고 허전하며 막막하고 답답하여 엉뚱한 것에 빠지기 쉽습니다. 자기네에게 좋은 말하는 쪽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협박하면 쉽게 넘어가 귀신을 섬깁니다. 그러지 마세요. 절대적으로 신앙의 견고한 교회 공동체 안에 거해야 합니다. 다소 밋밋한 것 같아도 정통 교회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안전한 울타리입니다. 그러지 않고 부평초처럼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며 헤매다가는 필히 귀신에게 사로잡히고 맙니다. 큰 일 납니다.

 

   () 희망을 갖고 기도하십시오(10-14)

 

   하나님께서 이 모든 디아스포라 계명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비록 지금 어려움을 겪었지만 하나님은 당신들이 그 어려움 겪는 것을 즐기시는 분이 아니심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은 우리를 위해을 도모하십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고통 받는 것을 즐기는 새디스트가 아닙니다. 하나님 마음을 다시 밝힙니다. 11.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하나님을 부정적으로 보지 마세요. 바벨론 심판을 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끝장내려 하신 것 아닙니다. 재앙이 목적이 아닙니다. 평안입니다. 소망을 주려는 것입니다. 소망을 주시려는 하나님에게서 소망을 찾으십시오. 긍정적 사고를 하세요. 자기 암시로 긍정적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긍정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그 하나님을 사모하십시오.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으니 우리가 할 일은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그 선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섯 번째 이민자 계명입니다. [s7] 12-13, 12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7:7-11]

 

7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9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10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끈질긴 기도는 운명을 바꿉니다. 기도로 자신의 운명을 바꾼 사람이 그 옛날 조상 중에 있었습니다. 야베스입니다. 역대상 4:9-10입니다. 야베스의 기도.

 

9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10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야베스는 그 시작이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존귀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무엇으로? 그는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어떤 내용으로 기도했습니까? 복을 더하소서. 지경을 넓혀주소서. 주의 손으로 도우소서. 환난 벗어나 근심 없게 하옵소서. 한 가지로 비판하고 나면 모든 것을 다 아예 매도하는 경향이 있는데, 야베스의 기도로 번영신학을 장사한 것은 잘못이지만 우리 같은 이민자에게는 이 기도가 필요합니다. 소수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 오늘 권하는 모든 내용의 기도입니다. 정착하게 하소서. 복을 주셔서 번성하게 하소서. 평안하게 하소서. 야베스는 다른 행적이 없습니다. 그는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고통에서 존귀로 바뀌었습니다. 지금 포로 생활의 시작은 아픔입니다. 그러나 명령한 것을 위해 기도하면 그 끝에 존귀가 오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를 위한최선이 있습니다. 우리 생에는 주어진 최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최선이 있습니다. 그것은 미래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를 위한 최선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됩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사십시오. 기도하세요?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도 이 땅에 살 때는 기도하셨습니다. 이민자는 기도하지 않으면 못살아요. 참 신기하네. 어떻게 기도 안하면서 그렇게 잘 살아요? 잘 사는 것이 아니지요. 그 끝이 어떻게 되나 보세요.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으십시오. 이민자의 복은 기도입니다. 이민자의 복은 하나님입니다. 이민자의 기도는 운명을 바꿉니다!

 

III.    

 

   절대로 뜨내기로 살지 마십시오. 나그네이지만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어느 곳이든 그곳은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네게 주신 분깃을 감사히 받아 그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달란트의 비유를 생각합니다. 다섯달란트 받았던 사람과 두 달란트 받았던 사람, 그리고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그들의 자세의 차이입니다. 다섯 달란트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5:20, 22). ‘내게 주셨다는 수용의 표현을 씁니다. 반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말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5:24-25). ‘주셨다고 고백하여 취하는 것이 믿음이며 충성입니다. 영구적으로 내가 소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인의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입니다. 그냥당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대단히 고차원적이고 신앙적인 것 갖지만 그는악하고 게으른 종이란 평가를 받았습니다. 무책임한 말입니다. 뜨내기처럼 책임감 없이 아무렇게나 살다가 본인이나 타인에게도 전혀 유익을 끼치지 않는 방랑자의 행색을 하지 말라 하십니다. 디아스포라의 삶은 그런 뜨내기의 삶이 아닙니다.

   [s8]디아스포라의 또 다른 의미는씨를 심다입니다. 씨를 흩뿌리기 때문에 이 단어가 씨를 심는 일을 가리킬 때 사용이 된 것이지요. 이민은 씨를 뿌려 옮겨 심는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런 이민자입니다. 그래서 이민자는 선교사입니다. 이민자는 개척자입니다. 이민자는 씨를 심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정착하고 번성하여 행복하고 기여하며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심겨진 씨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